김경진 — 장성에서 알고리즘까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 1966년 7월, 그 마을의 논배미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7남매의 맏이. 집안에 변변한 책꽂이 하나 없던 농가였습니다. 아이의 세계는 마을 뒤편 산등성이에서 끝났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뒤 그 아이가 검찰청 수사실과 국회 청문회장과 카트만두의 골목과 인공지능 강연 무대를 모두 거치게 되리라는 것은, 그 자신도 몰랐을 겁니다.
김경진이라는 이름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패턴이 눈에 들어옵니다. 끝이라고 여겨지는 지점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이는 것. 그 꺾임이 무모해 보일 때도 있고, 뒤늦어 보일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꺾인 뒤의 몰입입니다.
광주백운초등학교, 무진중학교, 금호고등학교. 호남의 학교를 차례로 거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들어간 그는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중이던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스물셋이었습니다. 사법연수원 21기를 마치고 군법무관 복무를 끝낸 뒤, 1995년 인천지방검찰청에 발령받으면서 검사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찰에서 보낸 13년은 김경진이라는 사람의 뼈대를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인천지검에서 시작해 전주지검 군산지청, 광주지검,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광주고검을 거쳐 대전지검 천안지청과 대전지검에서 부장검사까지. 기업범죄, 금융사건, 지적재산권 사건을 맡으면서 그는 방대한 서류 뭉치 속에서 핵심을 추려내고, 상대의 논리 구조를 파악한 뒤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찌르는 기술을 몸에 익혔습니다. 수사관이 아닌 질문하는 사람으로서의 기질. 이 기질은 이후 그가 거치는 모든 무대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2008년, 그는 검찰을 떠났습니다. 법무법인 이인의 광주 분사무소 변호사가 된 그가 가장 먼저 맡은 사건들은 환경미화원의 체불임금 소송, 소방공무원의 미지급 수당 소송, 군사정권 시절 고문 피해자의 법률 구조였습니다. 검사 시절 기업범죄를 다루던 사람이 법복을 벗자마자 노동자와 피해자 쪽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경력의 화려함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택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습니다.
정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2007년, 문국현 대선 후보 캠프에 법률특보로 합류한 것이 첫 접촉이었습니다. 이듬해 2008년 총선, 광주 북구 갑. 낙선. 2012년 같은 선거구. 다시 낙선. 두 번의 패배가 쌓였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같은 선거구에 세 번 도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한 번 지면 지역구를 옮기거나, 비례대표를 노리거나, 아예 정치를 접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김경진은 세 번째에도 같은 곳에 섰습니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국민의당 후보. 결과는 광주·전남 지역 최다 득표율인 70.8%, 6만 5천여 표. 세 번째 도전이 끝나는 방식은 이전 두 번과 달랐습니다.
국회에서 그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디지털 거버넌스,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데이터 보호. 법률가 출신 의원이 기술 정책의 한복판에 앉은 것입니다. 그가 대표 발의한 인공지능 기본법안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AI 입법 논의의 시작점이 되었고,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 과정에서도 그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42년간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옥죄던 이 지침이 조약도 아닌 약속에 불과하다는 법률적 논거를 일관되게 밀어붙인 것, 그리고 미사일 엔진 기술이 우주 산업의 동력이라는 점을 연결한 것은 검사 출신의 논리력과 과기정통위 소속 의원의 시야가 겹치는 지점이었습니다. 과학기술혁신본부 창설을 주도한 것도 이 시기의 일입니다.
그러나 대중의 기억에 그의 이름을 가장 선명하게 새긴 것은 법안이 아니었습니다.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석에 앉은 사람들을 향해 그가 던진 질문들은 고성이나 추궁이 아니라 차분하고 정밀한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증인의 진술 구조를 해체해 갔고, 시청자들은 검사 출신 의원의 심문 기술이 국회에서 작동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했습니다. 호남 억양이 묻어나는 특유의 어투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쓰까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수사 현장에서 13년 동안 갈아온 칼이 청문회장에서 빛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2024년 4월, 제22대 총선. 낙선. 정치인에게 선거 패배는 익숙한 사건이지만, 두 번째 낙선은 첫 번째와 무게가 다릅니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 다시 민간인이 되는 순간의 낙차.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 시점에서 복귀 전략을 짜거나, 정치 평론가로 전환하거나, 사무실에 앉아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김경진은 스무 날 만에 배낭을 꾸렸습니다.
인도, 네팔, 튀르키예, 말레이시아, 아르메니아, 슬로바키아, 우즈베키스탄. 석 달에 걸쳐 13개국. 수행원 없이, 가이드 없이.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 배낭 하나 메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그는 처음 보는 문자로 쓰인 메뉴판 앞에 서서 스마트폰을 꺼내 ChatGPT에게 물었습니다.
30여 개 언어가 뒤섞인 여행길에서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통역사였고, 여행 가이드였고, 문화 해설사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원 앞에서 기독교 역사를 물었고, 말라카 해협을 바라보며 해상 무역로의 지정학을 물었습니다. 그는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여행기들은 나중에 책이 되었습니다. “천 개의 기도, 하나의 산 — 아르메니아를 읽다”, “말레이시아, 말라카 해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조지아 역사 문화 기행”. 배낭여행자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지식인의 독서 노트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의 머릿속에는 정치 복귀 시나리오가 아니라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귀국 직후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정치 현안 대신 인공지능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같은 패널에 앉은 정치 평론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방송국은 전직 국회의원의 정치적 재기를 기대했지만, 김경진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 달 만에 원고를 완성하여 출판사를 찾아갔습니다. 1year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쏟아낸 저서 목록은 기이할 정도로 깁니다.
“AI 행정혁명: 글로벌 정부의 AI 혁신 가이드북”은 16개국 정부의 인공지능 도입 사례를 분석하면서 EU AI Act와 미국의 AI 이니셔티브, 중국의 알고리즘 등록제까지 망라합니다. “AI 패권전쟁: 김경진의 국가 AI 설계 가이드북”은 미·중 기술 경쟁 속에서 한국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묻고, 로봇세와 기본소득, AI 배당 같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AI 생활, 매순간이 달라진다”는 보청기를 낀 어르신도 인공지능을 쓸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풀어쓴 실용서입니다. 그 밖에도 “인공지능 전투기, 인공지능 공군”, “PALANTIR 전쟁 감시 인공지능”, “뇌를 읽는 사람들”, “AI가 인간에게 던지는 10가지 질문”, “AI 국방혁명”, “AI교실, 성적이 달라진다”, “인공지능 선거”, “인공지능 AI, 법정에 서다”까지. 국방, 교육, 법률, 선거, 뇌과학. 인공지능이 닿는 거의 모든 영역을 건드렸습니다. 여기에 샘 알트만과 젠슨 황의 전기, 문명론, 정치 입문서, 학교폭력 법률 가이드까지 합치면 저서는 스무 권을 넘깁니다.
이 저서들에는 검사 출신 법률가의 분석력과 국회의원 출신 정책 전문가의 거시적 시선이 겹쳐 있습니다. 기술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 기술이 법과 제도와 사회 구조에 부딪히는 지점을 짚어내는 것. 엔지니어의 책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시각이고, 법률가의 책에서는 드문 기술적 구체성입니다.
강연 요청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 3회 이상, 전국 각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교사, 대학생, 자영업자, 보험설계사. 그는 경로당 어르신에게도 인공지능 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날아오는 문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대소변을 사진으로 찍어 AI에게 건강 상태를 물어봤다고 했고, 어떤 분은 손주에게 보낼 편지를 AI의 도움으로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기상천외한 피드백이었지만, 기술이 사람의 삶에 파고드는 방식은 언제나 예상 밖의 경로를 따릅니다.
YTN 라디오, CBS 뉴스쇼, KBC 방송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전자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며, 한국경제TV 와우아카데미에서 AI 활용법을 강의합니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합니다. 16개국의 AI 정책을 비교 분석하고, GDPR과 개인정보보호법을 넘나들며, 디지털 거버넌스와 스마트시티와 자율주행의 규제 체계를 논합니다.
김경진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려면 경력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환의 순간마다 그가 보여준 선택의 방식입니다.
검사에서 변호사로 전향할 때 임금 소송과 인권 변호를 택했습니다. 두 번의 낙선 뒤에도 선거구를 바꾸지 않고 같은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국회의원 낙선 뒤에는 정치 복귀 대신 배낭여행과 AI 연구라는, 예순 가까운 사람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꺾었습니다. 꺾임의 각도가 급할수록 그 뒤에 오는 몰입의 밀도는 높아졌습니다.
전라남도 장성의 논배미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동선이 검찰 수사실, 국회 청문회장, 카트만두의 뒷골목, 아르메니아의 수도원, 전국 각지의 AI 강연 무대를 관통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법률과 기술, 정책과 대중 교육 사이를 잇는 가교. 그것이 김경진 변호사가 지금 서 있는 자리이고, 그가 다음에 어디로 꺾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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